그리운 야생 노루 사진 한 컷에 시선이 멈춘다.
사진에 시선이 오랫동안 머문다는 의미는 '그립다'는 뜻이다.
수많은 야생 노루 사진 중에서 케빈(야생 수컷 노루 별명)의 사진이 끌리는 이유는 나와 소통을 자주 했던 세월의 흔적이 많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외모가 잘생기고 귀여워서 좋아하는 것이 아닌 케빈을 만나면 나를 보는 것 같고 생각과 움직임이 매우 비슷하여 이 녀석을 만나면 사회에서 시답지 않게 얻은 불필요한 스트레스가 사라지기 때문에 좋아하는 노루 중에 한 마리다.
인간들에게 투자했던 세월보다 야생 노루들과 함께 해온 9년의 세월이 오히려 나에게는 돈보다 값진 세월이었다.
인간들을 만나면 소통보다 '소음'이 많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인간 대신 야생 노루들을 만나러 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노루들의 삶 속에 젖다 보면 평범함 그 이상의 것을 발견하기도 하며 잊고 살아온 자연의 소중함을 뒤늦게 배움을 얻을 수 있어서 나는 자연이 허락한 공간 안에서만 시간의 흐름을 기록한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야생 노루들의 사진을 보정하는 시간은 흥분보다 지금의 나를 더욱더 성장시키기 위한 채찍질 역할을 해준다. 그리고 계획 없던 사진 앨범(케빈의 야생 노루 이야기)까지 제작하게 만들어 고통을 준다. 때론 수많은 인간들과 접촉하는 시간보다 야생 노루 한 마리가 던져준 '교훈'과 '울림' 그리고 '고통'이 학교 선생님보다 훌륭한 스승처럼 느낄 때가 매우 많다.
2022년도 11월 4일에 만났던 케빈(야생 수컷 노루 별명)의 사진을 감상하니 그때 당시 촬영했던 장소에서 아마추어 사진가로 활동하던 나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과거로 돌아가는 착각을 일으켰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을 때는 타임머신 기계 덩어리가 필요 없고 오래전에 촬영했던 낡은 사진 한 컷 감상으로 충분히 시간을 거꾸로 되돌릴 수 있기 때문에 온라인 쇼핑몰에서 타임머신을 구입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이 발견하기 쉽지 않은 장소에서 준엄한 표정을 하고 왕좌에 앉아 있는 왕처럼 품위 있는 자세를 유지하는 케빈(야생 수컷 노루 별명)의 얼굴에는 졸음과 전쟁하는 표정이다. 눈을 감지 않기 위해 혼을 쏟아부어 노력하는 케빈의 눈빛이 안쓰럽다.
자연을 품으면 인간들이 덮고 자는 이불보다 따뜻하기 때문에 전기장판보다 열효율이 좋아 케빈(야생 수컷 노루 별명)이 졸음과 싸우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노루의 눈빛만 읽어도 이런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는 나의 감성에 다시 한번 놀라움을 삼킨다.
사진 한 컷에는 미묘한 감정들이 숨어 있어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촬영 당시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촬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서 사진을 확인할 때 뒤늦게 발견하게 되는 감정들이 무수히 많다.
단순히 귀여움과 멋있는 것에만 꽂혀 사진 촬영하기 보다 피사체를 오랫동안 바라보고 접촉해야만 보이지 않던 감정들이 발견하게 되고 사진을 기록하는 재미가 생긴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기다림이라는 표현보다는 관찰력이라고 해석한다. 어차피 사진은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는 피사체를 똥 기계 카메라를 이용하여 사진으로 표현해 주는 역할만 할 뿐 카메라가 신보다 훌륭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고 사진 생활을 해왔다.
노루 한 마리를 촬영하기 위한 소통의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사람도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낯설어 하듯 야생 동물들도 처음 만나는 인간에게 마음을 열어주기 위해서는 꽤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마음에 드는 주제를 찍고자 할 경우에는 같은 장소를 몇 번이 아닌 몇십 년 이상 투자해야만 아름다운 감성이 담긴 한 컷의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최소한 사람 몸 안에 모든 관절에 무리가 와서 정형외과 의사와 친해질 수 있을 정도로 긴 시간 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할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아름다운 피사체와 소통을 할 수 있고 풍부한 감성이 담긴 사진을 얻을 수 있다.
화려한 사진 경력보다 경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눈과 마음이 훈련되어 있지 않은 사진가를 매우 싫어한다. 그런 부류들의 사진가들은 이쁘고 화려한 것에만 뇌가 발달되어 있어 타인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는 사진을 얻지 못한다.
나는 사진에 대한 영감을 찾기 위해 '노인정'을 방문하는 것보다 '영화'나 '음악'을 통해 감성과 관찰력을 쌓는다.
그래서 사람들 만나는 시간보다 음악과 영화에 젖어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사람을 만나면 감동과 울림을 전혀 느낄 수 없고 소음만 존재하며 접촉할 때마다 징징거리고, 투덜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 항상 들려서 세 자릿수를 유지하던 아이큐가 두 자릿수로 떨어지거나 나의 아름다운 감성이 파괴되기 때문에 가급적 인간들을 피하면서 살아간다.
긴 세월이 던져준 나이가 차오르니 9년 동안 만남을 유지했던 케빈(야생 수컷 노루 별명)도 인간 나이로 환갑이 넘는 나이가 되어 자주 만날 수 없는 것 같아서 마음이 저며오고 그리움만 점점 쌓여간다.
사람에게서 그리움을 전혀 느끼지 않던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야생 노루 한 마리에게서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솔직히 그리운 인간은 내 마음속에 존재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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