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삶과 어울리는 나이가 되니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인간들의 소리와 댓글들이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되자 나의 블로그는 점점 건강해져 간다. 한동안 불필요한 공감, 댓글, 광고 수익금에 연연해 하며 허우적거렸던 지난날 나의 모습은 사라지고 지금은 나만의 세월이 담긴 흔적을 기록하기 위한 목적에 초점을 맞추어 블로그를 유지하는 중이다. 시답지도 않은 숫자 노름에 타협하지 않고 나만의 순수한 감정과 영혼에 집중하게 되니 흐림에서 맑음이 되었다. 감정의 균형이 깨지지 않기 위해 오늘도 과거에 촬영했던 케빈(야생 수컷 노루 별명)의 사진에서 나의 시선이 오랫동안 머문다.
2022년도 제주도 한라수목원에서 접촉했던 야생 노루들은 개성이 매우 강한 야생 노루들 천지였다. 떼로 출현하는 야생 노루들 때문에 어레스트(arrest, 심정지)가 올 뻔했던 아찔한 경험도 했으며 그들을 기록하기 위해 자연 위에 몸을 던져 희생했던 아찔한 나의 모습도 기억난다.
전문적으로 사진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닌 지극히 취미생활에 만족하고 노루들을 낡은 카메라에 기록하려고 했으나 욕심이 부른 결과는 참혹했다. 하지만 촬영 시간을 분배하여 마음 안에 시답지도 않은 욕심을 모두 비우고 몇 년에 걸쳐 투자한 결과는 지극히 한량 한 야생 노루들의 아름다운 사진을 건질 수 있게 되어 지금은 만족하고 있다.
홀로 아름다운 자연 속에 갇혀 그 누구의 간섭과 개입 없이 초원 위를 달리는 케빈(야생 수컷 노루 별명)은 길들여지지 않은 한 마리 야생마처럼 보였다. 마치 '쇼생크 탈출' 영화에서 감옥을 탈출하여 자유를 되찾아 기뻐하는 배우 '팀 로빈스'를 보는 것 같은 착각까지 일으켰다.
인간 세상과 달리 야생 노루들의 세계는 매일 행복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고 있어 인간 세상보다 행복해 보였다.
자연을 먹던 중 케빈(야생 수컷 노루 별명)은 자신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케빈(아마추어 사진가 Kevin)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하늘을 바라본다. 카메라 셔터 소리에 익숙했던 케빈(야생 수컷 노루 별명)은 이미 내가 아마추어 사진가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혼을 쏟아부어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카메라만 보이면 감성에 젖은 연기를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케빈의 모습 때문에 잠시 정신줄을 놓게 되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카메라를 의식하는 것인가?
아니면... 한 컷 멋지게 박아달라는 뜻인가?
혼란스러웠고 두려웠다.
감성에 젖은 눈빛과 포즈는 인간 연기자들 보다 훌륭한 연기력을 보여주었고 카메라를 붙잡고 있던 나의 손마저 떨게 할 만큼 훌륭했다. 케빈(야생 수컷 노루 별명)의 가식적인 연기에 푹 빠져 구경하던 나는 카메라 셔터 버튼을 누르는 타이밍을 놓칠 뻔했던 아찔한 순간도 경험했던 그때였다.
그날의 한 컷 속에 담긴 케빈(야생 수컷 노루 별명)의 가식적인 표정은 밝고 행복한 표정이 아닌 암컷을 그리워하는 표정으로 기억하고 있다. 처음에는 짝 없이 홀로 자연 속에서 야생마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홀로 있는 모습이 자주 보여 다른 노루들에게 왕따를 당한 것이 아닌지 생각했으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고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노루라는 것을 긴 시간이 흐른 뒤에 서서히 알게 되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시답지도 않은 것들에게 개입과 간섭에 굴복당하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가 보였으며 자신이 사랑하는 암컷 노루를 찾기 위해 스스로 외로움을 삼키며 제주도 한라수목원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수컷 입장에서는 암컷을 잘 만나야 한다.
암컷을 잘못 만나면 평생 '바가지'와 '잔소리'를 듣게 되고 수컷이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을 모두 털릴 수 있기 때문에 암컷을 잘 만나야 한다. 그래서 케빈(야생 수컷 노루 별명)은 홀로 고독을 삼키며 자신에게 맞는 암컷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그렇게 외로움과 싸우며 견디고 있었다는 것을 눈빛을 보고 읽을 수 있었다.
나는 보았다.
케빈(야생 수컷 노루 별명)의 눈빛 안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지천에 널린 먹을거리가 걱정이 아닌 평생 사랑할 수 있는 암컷 노루를 찾고자 하는 애절한 눈빛 말이다.
동물이나 인간이나 사랑 앞에서 나약해지는 것은 신의 영역이라 뭐라고 말을 하지 못하겠다.
사랑이란 처음에는 낭만이지만 사랑 후부터는 절망으로 바뀐다는 것을 아직 모태솔로 케빈(야생 수컷 노루 별명)은 모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지만 사랑에 배고픈 야생 수컷 노루의 마음을 내가 조정할 수 없으니 마음만 아플 뿐이다.
그날 케빈(야생 수컷 노루 별명)과 나는 맑은 제주 날씨 속에서 각자 행복이 넘치는 시간을 가졌고 짧은 만남이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깔끔하게 소화하여 뜻깊은 하루를 보낼 수 있어서 행복한 하루를 맞이했던 그날이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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