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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노루

다시 고통

by Kevinso 2025.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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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진 생활을 해오면서 마지막으로 행복했던 날은 2022년도다.

그때는 모든 것을 버리고 비워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큰 감동에 젖을 수 있었던 한 해였다.

고통과 아픔들이 수시로 나의 삶을 방해할 때마다 나는 카메라를 먼저 찾게 되었고 카메라를 손에 쥐는 순간 고통과 아픔을 잊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2022. 11. 6 / Nikon D200(20년째 사용 중인 카메라) + SIGMA 70-200mm (2025. 5. 14 렌즈 사망) / 촬영 장소: 제주도 한라수목원

 

 

나의 고통은 지금 현재까지 멈춤 없이 진행 중이다.

고통은 타인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닌 내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어쩌면 나의 고통스러운 삶은 타고난 운명이거나 노력이 부족해서 생긴 고통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은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만 그놈의 자존심과 허세가 나의 병을 키워 결국 고통을 품게 된다. 타인들의 위로와 동정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타인들의 기분과 감정에만 맞춰 나의 감정을 속인 채 달콤한 위로와 동정을 토해왔으나 결국 감정 놀이일 뿐 타인들이 발전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이제는 상대방 감정 상태를 고려하여 말을 돌려서 대화를 나누지 않고 잘못된 것은 크게 지적하여 따끔하게 야단을 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하고 싶다. 요즘 사람들은 정신력이 약해서 따끔한 충고를 해주면 금방 삐져서 결국 말싸움으로 번진다. 그렇다고 해도 앞으로는 타인들이 어떠한 고통을 품고 살아가든 그들에게 동정과 위로 대신 직설적으로 대화를 하려고 한다. 나의 직설적인 멘트가 통하지 않다면 상대는 발전할 가능성이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 두 번 다시 만남을 이어가지 않으려고 한다. 동정과 위로는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더 약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아직도 내 주위 지인들 중 잘 삐지는 성격들이 너무 많아서 접촉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혹시라도 만날 일이 생긴다면 동정과 위로 대신 따끔한 충고와 직설적인 대화법으로 대화를 나누거나 이제는 피하고 싶다.

불필요한 대화와 감정 놀이는 오늘로 끝이다.

 

일단 나는 그동안 악조건 상황에서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노력을 해왔기 때문에 지나간 세월에 대해 후회는 없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강한 의지 이외에 답이 없는 상태며 이것마저 흔들린다면 나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되어 극단적인 상황으로 갈 수밖에 없다. 어려운 삶 속에서도 끝까지 버티며 살아온 결과는 고작 벗어날 수 없는 가난과 질병만 남았다. 그래도 내 삶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억지로 살아갈 뿐 더 이상 나의 마음속에는 누구를 위로해 줄 따뜻한 감정은 없다.

 

내가 웃고 있을 때 상대는 나의 감정 상태와 고통을 전혀 알 수 없다. 당연하다. 가깝게 알고 지내는 지인들도 모른다. 알아야 할 필요도 없고 알려 줄 필요도 없다. 스스로 자신의 고통을 상대방에게 상세하게 털어놓지 않는 이상 상대방은 나의 삶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다. 상대방에게 나의 사정을 이해시키려 하지 말고, 무엇을 바라지 말고 자신이 처한 고통을 함구하여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되거나 고통을 즐기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살이를 구구절절 상대방에 토해내는 모습은 흉하다.

 

좋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다. 그들도 나름대로 살아오면서 수많은 고비와 고통을 견디며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자기 자신과 싸운 사람들이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따뜻한 환경에서 살아온 자들이 아니라 인간이 태어나서 죽기 전까지 겪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경험해온 사람들이 좋은 사람으로 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인간 세상은 무엇을 하든 고통 없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는 사회 구조다.

가난과 부자 사이에 경계선이 중요한 것이 아닌 어떠한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항상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지금 당장 내 앞에 닥친 고통을 해결했다고 해서 자신의 삶이 평생 평화로운 것이 아닌 또다시 나에게 찾아오는 새로운 고통을 견디기 위한 훈련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출발선이 다르다고 하여 투덜대지 말고 세상 탓, 부모 탓하지 말고 어른이라면 어른답게 묵묵히 자신이 개척한 고생길을 당당하게 받아들여 바르게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좋은 사람이며 그게 바로 어른의 자세다.

 

그땐 몰랐다. 사람들이 징징거리고 투덜거리는 소리가 매우 지겨운 소리라는 것을 몰랐다.

타인의 감정까지 고려하여 투덜거림을 무조건 받아준다면 상대는 점점 약해지고 그 맛에 길들여져 발전하지 못한다. 때론 동정과 위로도 큰 힘을 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불필요한 감정을 타인에게 낭비하며 살아갈 필요가 없다. 자신이 처한 삶의 고통들은 합법적인 고통이 아니며 자신이 못났거나 타고났거나 또는 스스로 노력을 하지 않는 자들에게만 찾아오는 고통이다.

 

나의 고통스러운 삶은 마음의 상처를 키우게 되어 정상적인 사람들에게 이유 없이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과 접촉을 피하고 이유 없는 만남을 이어가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타인들의 힘을 빌리지도 바라지 않는 자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사람마다 의견과 생각도 다르고 살아가는 환경 모두 다르기 때문에 타인에게 내 삶을 맡겨 조언을 듣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정답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 때 찾아오는 것이며 한 번에 정답을 찾길 바란다면 아직 성숙하지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모든 고통을 꿰뚫을 수 있는 눈을 가졌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영화가 아닌 현실이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긴 세월 속에 다져진 타인들이 겪은 삶의 이야기를 듣고 가이드라인을 찾기도 하지만 다양한 인간들을 일일이 만나 해결책을 찾는 것도 긴 시간이 필요하며 정보력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에 스스로 부딪혀서 답을 찾는 것이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으며 불필요한 감정을 낭비하지 않게 된다.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다시 태어나 상대의 삶을 살아보기 전까지는 상대의 삶을 개입하거나 간섭하면 안 된다. 경험적인 이야기와 지식은 전달할 수 있으나 상대의 삶을 마치 살아본 것처럼 가르치려는 대화는 상대의 감정을 파괴하게 되어 감정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그래서 본인이 짊어지고 있는 고통은 성인이라면 본인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좋다. 타인들은 절대 상대방에게 금전과 물질적인 도움을 절대 주지 않는다. 나의 고통을 타인들의 힘을 빌려 해결하고자 한다면 그 사람은 그동안 인생을 잘못 살아온 사람이다.

 

며칠 사이 예고 없이 찾아온 신체적인 질병 때문에 마음속에 오랫동안 머물고 있던 지인에게 의도하지 않은 감정을 실어 마음의 상처를 주게 되었다. 상대도 나의 삶을 100% 알고 있지 않아 당연한 결과였지만 전화를 끊고 생각해 보니 나의 질병이 곧 상대에게 더 큰마음의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아직까지 미안한 감정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나의 아픔은 신이 아닌 이상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다. 결국 답은 내 안에 있고 내 스스로 움직임을 통해 답을 찾으면 되지만 그동안 살아온 나의 삶은 두꺼운 벽 속에 갇혀 살아와서 스스로 병을 키워 뚫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용기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억누르고 있는 고통의 무게가 나를 가둬둔 것이다.

 

과거에 경험했던 고통이 다시 나에게 찾아와서 멘탈이 무너졌지만 이틀 정도 지나니 원래의 가벼운 감정 상태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제 나에게 남은 수명은 20년 정도라고 예상하고 있다. 남은 20년 동안 부자가 되기 위함보다 내가 20년 동안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것들을 찾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사진이 내 인생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아무리 힘든 고통이 찾아와도 사진을 통해 해소를 할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지만 사진 이외에 것도 찾고 싶어졌다. 사진마저 없었다면 지금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고 이미 오래전에 죽었을 것이다.

 

작품 사진만 고집하기 위해 사진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현재 짊어지고 있는 고통의 무게를 줄이기 위한 행위일 뿐 사진에도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사진 생활을 하고 있다. 그동안 나는 나 자신에게 너무 고통을 주고 살아왔다. 피할 수 있는 것들은 피해버리고 자신을 위해 건강을 생각하며 살아왔으면 지금보다 더 악한 상황까지 가지 않았을 텐데 긴 시간이 지난 오늘에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 나에게 일어날 상황에 대해 모든 일에 기대를 하지 않고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스스로 인정하고 살아가려고 한다. 기대라는 단어는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빼앗아 갈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단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기대의 의미는 열심히 살아온 사람과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몇 초의 희망을 품고 있는 단어일 뿐 긍정의 단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복잡한 마음보다 현재 내가 감당하고 있는 재발된 질병을 앞으로 스스로 다스리기 위해 사람 대신 과거 촬영했던 야생 수컷 노루 사진 한 컷을 감상하며 위로를 받는 중이다. 때론 고통이 복잡한 마음과 육체의 고통을 편안하게 만들 수 있어서 꼭 나쁘다고 볼 수 없다. 질병은 환경적인 문제보다 본인 스스로 병을 키웠기 때문에 스스로 인정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11월 6일 화려한 병풍 앞에 서있는 케빈(야생 수컷 노루 별명)은 다가오는 추운 겨울을 위해 겨울옷을 입고 내 앞에서 자랑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멋있게 자란 뿔과 겨울옷을 함께 입고 있으니 케빈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그날은 빛이 좋아서 모든 자연의 색을 아름답게 포장했고 고민을 버리고 촬영해도 될 만큼 마음에 드는 사진을 많이 촬영할 수 있었던 하루였다. 케빈이 지나간 발자국을 하루 종일 따라다니며 시간을 기록하고 나의 감성을 기록했다. 케빈이 이동하는 길은 내가 알고 있는 인생길이라서 나보다 빨리 뛰어 도망가도 결국 만나게 된다.

 

그날의 느낀 감정을 오늘 다시 꺼내 느껴보니 오전까지 힘든 나의 육체가 지금은 편안해져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약 때문인 것 같다.

나의 모든 고통의 해소는 인간이 아닌 카메라 한 대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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