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한라수목원에서 살아가는 야생 노루들과 오랫동안 소통하다 보면 부패한 인간 세상에서 결코 배울 수 없는 울림과 삶의 지혜 그리고 자연 앞에서 인간은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수많은 야생 노루 중에서 10년 동안 3번만 만날 수 있었던 수컷 노루도 나의 카메라에 기록되었다. 멋있는 수컷 노루의 뿔은 자신이 왕임을 증명하듯 울창한 숲과 닮은 뿔을 가지고 있었고 긴 세월을 살아왔음을 뿔만 보아도 알 수 짐작할 수 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숲속에서 자연을 씹어 먹는 제우스의 모습은 전쟁을 치르기 전 마지막 식사를 하는 왕처럼 보였다.
제우스의 별명답게 수컷 노루의 뿔은 신이 가지고 놀던 삼지창과 닮아 제우스라는 별명을 지어주었지만 제우스의 사진은 10년 동안 고작 6컷이 전부였을 만큼 나와의 만남이 짧은 유일한 수컷 노루다. 그가 한라수목원에 등장할 때 풍기는 모습은 다른 야생 노루들에게서 느낄 수 없던 강한 인상을 심어주어 평생 잊지 못할 얼굴이다.
긴 만남은 아니었지만 나를 만난 것도 운명이라 생각한다.
가까이 다가가도 움직임 없이 나를 노려보는 제우스의 눈빛은 나를 포함한 다른 노루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심어주어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마치 전사 같은 이미지가 더 어울렸던 수컷 노루다. 수컷 노루의 뿔 한줄기가 1년이라고 했을 때 제우스의 뿔은 방향을 잃고 뻗어 나온 뿔의 개수만 보아도 적은 나이가 아님을 현장에서 바로 알 수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왔을까? 아니면 돌고 돌다가 제주도 한라수목원에서 우연히 만난 것일까?...
아직도 제우스를 처음 만났던 장소와 눈빛 그리고 뿔이 잊히지 않는다.